소설

북과 남 후기- 오만과 편견을 좋아한다면 추천하고 싶은 소설

겨울오렌지 2025. 3. 30. 22:46

 

 

 예전에 BBC 제작 드라마인 '북과 남'을 본 적이 있다. 시대극 로맨스를 좋아하는데, 딱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만 가득해서 재밌게 본 기억이 난다. 보면서 오만과 편견이 많이 떠올랐는데, 나 같은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닌 듯 오만과 편견 산업적 버전이라는 평도 있더라. 아무튼 드라마가 너무 재밌어서 원작 소설도 언제 한 번 읽어봐야지, 생각했는데 최근에 리디셀렉트에 들어왔더라고! 보자마자 '읽어야겠다!' 생각은 했지만, 책이 이북 기준 2200페이지가 넘어 어마어마한 분량에 잠시 보류했다^^; 최근에 용기 내어 읽기 시작했고, 중간에 책태기도 와서 완독 하는데 20일 넘게 걸렸다. 그래도 한 달 안 걸린 게 어디야. 완독 했다는데 의미를 둬야지ㅋㅋ
 
 소설은 따뜻한 남부 시골에서 살던 마거릿이 공업도시인 북부의 밀턴으로 이사와 그곳의 공장주인 손턴네 가족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생활들을 보여준다. 마거릿과 손턴의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어딘가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를 떠올리게 한다. 근데 산업적 버전이라는 평이 어울리는 게, 마거릿은 손턴 뿐만 아니라 매연 가득한 공업 도시 밀턴에 대해 부정적인 첫인상을 가지고, 손턴은 사교계에 익숙한 마거릿의 모습을 보자 당황하며 굉장히 품위 있는데 오만하고, 자신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주인공들이 느낀 서로의 첫인상이 별로였다는 점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 문학들이 그러하듯 주인공들의 나이차도 꽤 있는 편인데 손턴은 서른쯤 됐고, 마거릿이 한 스물쯤? 됐다는 묘사가 나온다(마거릿의 정확한 나이 찾아보려고 다시 책 뒤적거렸는데, 정확히 어디쯤 나온 말인지 모르겠네ㅠ). 현대 배경이면 좀 '으...' 하게 되는 나이차지만, 고전 문학이니 그냥 '그렇구나.' 하고 봤다. 그래도 나름 손턴한테도 판타지적인 묘사가 들어간 게 자수성가로 일만 열심히 하느라 서른까지 제대로 된 사랑도 못해봤다는 설정이다. 거기다 지식적인 욕심도 있어 마거릿의 아버지인 헤일에게 수업받으러 오기까지 한다. 가족들도 잘 챙긴다는 설정이고. 이 정도면 세계문학 기준 꽤 괜찮은 남자 주인공이지 않나. '제인에어'에서 로체스터씨는 주구장창 못생겼다는 이야기만 나온다구요-
 
<여기서부터는 스포주의!>
 
  소설은 마거릿과 손턴이 돌고 돌아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는데서 끝난다. 이미 드라마를 본 상태라 소설에서는 두 사람의 장면들이 그만큼 많지 않아 로맨스가 조금 아쉬웠다. 드라마에서 나왔던 떠나는 마거릿을 바라보며 손턴이 'look back, look back at me.' 하는 장면들이나 기차역에서 만난 두 사람이 서로 마음 통하는 마지막 장면 등은 소설에서 안 나오더라구요.. 그래도 마거릿과 손턴이 서로에 대한 생각들이 바뀌어 가는 부분이나 주변 인물들의 스토리는 더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소설도 재밌게 잘 봤다. 주변 인물 중에 좋았던 인물은 딕슨. 딕슨은 완전히 헤일 부인 편이어서 헤일 씨가 부인 속 썩이게 할 때마다 되게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그게 너무 웃겼다ㅋㅋㅋ딕슨이 하는 말이나 생각들만 따로 정리하고 싶을 정도였다. 후반부에는 많이 등장하지 않아 살짝 아쉬웠다. 그리고 손턴의 어머니도. 마거릿을 마음에 안 들어하고, 아들에 대한 지나친 사랑으로 질투도 하지만, 아들이 마거릿한테 청혼하러 가는 거 보고 어떻게든 축하해 주려고 마음 다잡는 모습이 묘하게 웃겼다. 이게 K-드라마였다면 무슨 일을 써서라도 막으려고 했을 텐데.
 
  그리고 담담하게 그려서 그렇지 이 소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헤일 부인부터 시작해, 헤일 씨, 그리고 마거릿의 대부인 벨 씨까지. 헤일 부인이야 앓다가 죽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며 봤는데 헤일 씨랑 벨 씨는 너무 빠르게 가셔서 마거릿의 처지에 너무 공감하며 봤다. 짧은 시간 내에 가족들이 다 사라졌는데, 그 심정이 어떨런지... 마거릿이 견디기엔 너무 큰 고통이었을 것 같다. 또, 소설을 읽으면서 헤일 씨가 왜 굳이 목사 일을 그만두고 밀턴으로 이사 가는지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책 끝의 해설에서 작가의 아버지 윌리엄 스티븐슨도 목사로 재직하다 양심상의 이유로 사임했다고 적혀 있어, 작가의 경험이 좀 담긴 부분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웠던 게 작가인 엘리자베스 개스켈이 굉장히 외향적이었는지, 영국, 미국 작가들과 활발히 교류했다는 점이었다. 특히 샬럿 브론테와는 정말 친했는지, 나중에 샬럿 브론테가 세상을 떠나자 전기를 직접 집필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찰스 디킨스와도 친분이 있어 디킨스의 의견을 반영해 '북과 남'이라는 소설 제목도 정했다고 한다. 개스켈이 원래 원했던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인 '마거릿 헤일' 이었다고. 이외에도 다른 작가들과의 교류도 나와있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이 두 사람이라 이 두 사람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제일 흥미로웠다. 다 같은 시대 사람들이었다는 것도 신기하고. 생각해 보면 소설 배경들이 다 비슷한 것 같기도...?
 
 밑에는 인상 깊었던 구절들-
 

저렇게 자존심 세고 불쾌한 여자는 처음이야. 그 경멸적인 태도를 생각하면 눈부신 아름다움도 가려진다니까

 
 마거릿의 태도에 상처 받으면서도 외모는 부정 못하는 모습이 재밌어서ㅋㅋㅋ생각해보면 손턴은 마거릿한테 첫눈에 반했던 것 같다.

전 아가씨가 씩씩한 게 좋아요. 옛날 베리스퍼드 가문의 피죠. 돌아가신 존 경께선 집사를 그 자리에서 단 두 방에 쏴죽이셨어요. 소작인들을 착취했다는 말을 했다고요. 부식돌 가죽까지 벗길 정도로 지독하게 소작인들을 쥐어짜는 분이셨는데.
아가씨 얼굴에 먹구름이 낄 때면 도련님이 성낼 때 모습이 보여요.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일부러 아가씨를 화나게 만들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나머지 사람들한테는 관심도 없어. 난 그 사람들이 세상에 왜 있는지도 모르겠으니까. 주인님은 마님과 결혼하기 위해 태어났겠지.  

 
 딕슨의 칭찬인지 비꼬는 건지 모를 말ㅋㅋ이거 말고도 잔뜩 있는데, 이런 대사들 때문에 딕슨 캐릭터가 너무 재밌었다. 솔직히 이 소설 명대사는 거의 딕슨이 만들었다고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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