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야화 2권은 진짜 처음 읽는 것 같다. 사실 1권은 전에 몇 번 읽은 적이 있긴 했음... 왜 2권으로 넘어가지 않았냐, 고 물으신다면 1권의 내용들이 너무 반복적이고, 구시대적인 이야기라 흥미가 오래가질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에 천일야화 1권을 새로 읽으면서 술술 읽힌다는 생각을 했고, 약간 책태기 왔을 때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엠아지만, 책태기 올 때 읽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소설들로는 히가시노 게이고, 기욤 뮈소 작가님들의 책이 있다. 웬만한 책들이 다 평잼 이상은 한다고 생각한다).
2권도 1권과 마찬가지로 셰에라자드가 술탄에게 밤마다 잠에서 깨 이야기를 해주는 형식인데, 1권에서 말한 것처럼 '폐하 그럼 뒷얘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부분들이 많이 생략되어 진행된다. 안 나오는 건 아닌데, 1권처럼 빡빡하게 언급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2권에서 처음 시작되는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익숙한 '신드바드 이야기'이다. 사실 이전에 신드바드 이야기를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데 놀이기구 이름 영향인지 이미 아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근데 막상 보니 새로워 놀이기구 이름 외에는 내가 아는 게 전혀 없었구나 싶었음ㅋㅋㅋ
간단히 말해서 '바다 사나이 신드바드 이야기'는 신드바드가 배를 타고 모험을 떠나 겪는 온갖 신기한 경험들을 말한다. 총 7번의 여행을 떠났는데 대부분은 자의로 정한 거라, 죽을 위기에 처하면 '집에나 있을 걸'이라 후회하고, 집에 오면 '바다가 그립네.' 하며 다시 모험 떠나고 싶어 하고... 그런다ㅋㅋㅋ신드바드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묘하게 걸리버 여행기가 생각났다. 아주 오래전에 읽은 거라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걸리버 여행기도 걸리버가 집에 돌아오면 몸이 근질근질거려 '다시 모험을 떠나볼까?' 라며 새로운 곳으로 가 탐험하고 그랬던 내용인 것 같은데. 역시 인생이 콘텐츠가 되려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신드바드였다면 첫 죽을 위기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이 최고다!' 외치며 평생 고향 안 떠났을 거야... 여행을 7번이나 했으니 여행에서 겪은 일이 무궁무진한데, 솔직히 그 내용들보다는 계속 여행 떠나는 신드바드가 너무 인상 깊었다. 가족들 두고 가면 보고 싶지 않나?
가장 강렬했던 건 마지막의 재봉사 이야기. 진짜 킹받는 내용이었다. 얼마나 킹받았냐면 이거 읽는 동안 내 속이 답답해지고, 앞의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세예라자드가 해주는 이야기, 밤마다 쪼개 듣는 술탄도 이런 심정 아니었을까. 듣는 사람도 속 터지는 내용인데ㅋㅋㅋ 간단히 말하면 말 많고 오지랖 넓은 이발사 때문에 사랑도 잃고 망신만 얻은 한 청년의 이야기이다... 이건 정말 읽어봐야 알 수 있다. 아버지 몰래 애인을 만나야 하는데, 이발사가 이리저리 참견하고 다니고, 부탁하지 않은 일들도 열심히 하고, 심지어는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며 가라고 하는데도 떠나지 않는다. 이 이발사네 가게 장사 가능할지 그것도 궁금했다. 이발하는데 세월아 네월아 할 것 같고, 자기 잘난 이야기만 쉬지 않고 잔뜩 할 것 같은데 손님이 있을 수가 있나? 손님이 없어서 이렇게 오지랖을 부리고 다니는 건가? 이발사가 얼마나 말이 많은지는 아래에 인용으로-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바그다드 제일의 이발사요, 경험 많은 의사요, 지식 깊은 화학자요, 틀리는 법이 없는 점성술사요, 완성된 문법학자요, 완벽한 수사학자요, 절묘한 논리학자요, 기하와 산수와 천문학과 대수의 모든 분야에 통달한 수학자입니다. 그리고 우주의 모든 왕국의 역사를 알고 있는 역사가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철학의 모든 영역을 꿰고 있으며, 우리 문화의 모든 율법과 전승을 외우고 있으며, 시인이자, 건축가이기도 합니다.
인용된 부분 보면 자기소개 정말 길게 한다 싶겠지만, 저건 정말 일부만 인용해 온 거다. 저 앞뒤로 말들이 더 있다. 천일야화에서 여자를 바라보고 그리는 시선들이 불편해서 웬만하면 남자 편 안 드는데, 이 이발사 때문에 처음으로 저 말을 듣는 청년의 입장에 공감하면서 봤다. 새벽에 읽다가 내가 다 지치는 느낌... 근데 또 어떻게 보면 그만큼 강렬한 이야기였어서 지금까지 천일야화에서 나온 사랑 이야기보다는 재밌게 보긴 했다. 천일야화 사랑 이야기는 너무 패턴이 반복돼. 그거에 비하면 신선한데 한 번 읽은 것만으로 충분한 거 같고, 두 번 읽기는 힘들고... 막 지치긴 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천일야화 시리즈는 책태기가 왔을 때 보기 좋은 책으로 느껴져, 다음 3권은 언젠가 책태기가 왔을 때 이어서 읽어보려고 한다. 우선은 다른 책 먼저 읽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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