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을 목표로 하려고 나름 분량 적당한 책들 위주로 골라 보고 있는데, 적당한 분량이 주는 무게와는 다르게 읽는 데 시간이 꽤 걸린 책이다. SF소설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읽었던 SF소설이 다 문과 감성이 짙은 책들이었어서 이렇게 진지하게 과학적이고 리얼한 SF소설을 본 건 거의 처음인 것 같다. 과학적 지식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덕분에 한 줄 한 줄 계속 반복하고, 되짚어보고, 이해하려 애쓰며 읽었다(그런데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대다수라는 건 안 비밀;;ㅎㅎ). 마음을 울려 좋은 문장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경험은 있어도 내가 읽은 게 한국말은 맞는지 확인하려고 여러 번 읽은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비문학 도서들 읽을 때는 이런 경험 꽤 있었는데... 소설 읽으면서 이런 경험해 본 건 처음이다 진짜ㅋㅋㅋㅋ
달에서 우주비행사의 시체가 발견된다. 놀랍게도 이 시체의 사망 시점이 5만 년 전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 시체는 어느 행성에서, 어느 문명에서 왔으며 달에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등등을 논의하기 위해 유명 학자들이 모여 계속 연구하고 토론하는 내용이다. 일단 등장인물들이 다 내로라하는 학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가설은 과학적인 근거가 뒷받침해 준다. 이 소설이 탄탄하다고 느꼈던 부분이 바로 이 점이었는데, 과학적 용어와 지식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이과적 분야에는 무지해서 여기 등장하는 용어들, 지식들이 어디까지 진짜고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작가님이 굉장히 박식한 분이라는 것은 확실히 느껴졌다. 이 소설 다 읽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책 맨 처음에 나오는 작가님 소개글 다시 읽어본 거다ㅋㅋㅋㅋ근데 정말 이력이 화려하셨다. 왕립항공연구소에서 5년간 장학생으로 공부하고, 전기, 전자, 기계공학 등등을 공부하셨다고 한다. 탄탄한 소설에는 탄탄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그리고 소설가로서의 센스나 배려심도 있으셨던 게 과학적인 지식들이 줄줄 나오고 나서 등장인물들의 말을 빌려 간단히 정리를 해주신다. 그걸로 덕분에 많이 이해를 했어요 감사합니다 작가님...
소설은 미래를 배경으로 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 소설이 쓰여진 시점이 1970년대라는 걸 생각한다면 굉장히 세련된 소설이기도 하다. 읽으면서 전혀 촌스럽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요 몇 년 간 읽은 책 중에 '세련됐다'라고 느꼈던 게 장르는 다르지만 일본 소설인 '연애시대'였는데 둘 다 내가 그 책을 읽었던 시점보다 먼저 쓰였다는 게 믿기지 않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만약 내가 이와 비슷한 주제로 소설을 쓰고 비교를 한다면 내 쪽이 더 옛날에 쓴 책이라고 생각될 것 같아.... (물론 아쉬운 부분들도 있는데, 70년대에 활동한 작가님이라 생각하면 감안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달에서 발견된 우주 비행사의 시체(여기서는 찰리라고 부른다)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반전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 수많은 과학자들의 주장이 난무하는 연구와 회의에 나도 참석했다 보니 마지막에 좀 뭉클한 기분이 들긴 했다ㅋㅋㅋ시리즈물이고, 다른 사람들 후기 읽다 보니 2권은 더 재밌다고 해서, 언젠가 2권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읽기에는 머리가 아파 다른 소설들도 한 번씩 읽어보려구. 알아듣기 쉬운 내용이 필요해^_ㅠ
몇몇 기억에 남는 구절들 정리하며 마무리-
역사적인 그 기간에 20세기로부터 물려받은 이데올로기와 인종차별의 긴장감은 우주시대의 도래와 첨단기술의 생활방식이 확산됨으로써 저하된 출산율에 의해 사라졌다. 전통적인 분쟁과 의심의 암초는 인종과 국가, 종파 그리고 교의 등이 피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조화롭고 세계화된 사회로 통합된 것처럼 서서히 사라져 갔다. 오래전에 사라진 정치가들의 불합리한 영토의식은 미숙했던 국가들이 성숙함에 따라 스스로 해결되었으며 초강대국들이 국방예산은 해가 지나면서 점진적으로 줄어들었다... 전 세계적인 동의로 비무장화는 현실이 되었다.
뭐든 일어날 수 있는 게 미래라지만, 요즘 돌아가는 뉴스 보면 이루어지기 너무 힘든 미래 같다. 그래도 천천히 평화를 향해서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주는 우리 조상으로부터 받아야 할 유산입니다. 그렇다면 그곳에 가서 우리의 정당한 유산을 요구합시다. 우리의 전통에 패배란 없습니다. 오늘은 항성을, 내일은 은하계 밖 성운을, 우주의 어떤 힘도 우리를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찰리의 정체가 밝혀지고 나서, 단체커가 한 연설. 솔직히 힘겹게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가슴이 먼저 뭉클했다. 이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느꼈을 법한 감정을 나도 모르게 같이 느낀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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