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디스클레이머(DISCLAIMER) 후기

겨울오렌지 2025. 3. 2. 17:08

 
 
 

 

 

 주인공인 캐서린은 남편과 아들이 있는 성공한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아들인 니콜라스가 독립한 후, 남편과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캐서린은 침실에서 처음 보는 소설책 한 권을 발견한다. '낯선 사람' 이란 제목에 호기심을 느끼며 책을 읽은 캐서린은 충격을 받는데, 소설은 아무도 모르게 숨겨뒀던 캐서린의 과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 왜 갑자기 나타난 건지, 혹시나 다른 가족들이 읽진 않았는지 불안해진 캐서린은 책의 존재를 숨기려 하고, 어째서 이 책이 나타나게 된 건지를 조사하며 일상생활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책은 등장인물들의 시점을 계속 바꿔가며 진행되는데, 흥미롭게도 저자가 누구인지 초반부터 밝힌다. 그렇지만 왜 그런 책을 썼는지, 과거에 있었다던 일은 무엇인지는 천천히 공개되는데,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신이 아는 것,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 위주로 서술하다보니 읽고 있는 독자들도 같이 헷갈리게 된다. 그래서 누가 피해자고 가해자인지, 비밀은 지켜지는 게 맞는 건지 아닌지 혼란스럽기 때문에 처음에는 비밀을 감추려는 캐서린한테 좀 거리감을 두고 보게 된다. 이걸 응원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가족들이 아는 게 좋은 건가, 아닌가. 과거 사건의 전말은 한 소설 중반부부터 대강 감이 잡히는데(소설에서 완전히 공개한 건 아니지만, 읽다 보면 느낌이 온다), 그래도 등장인물들의 감정 묘사가 세심해서 계속 끝날 때까지 책에 몰입하게 해 준다. 어느 순간부터는 과거의 사건이 무엇인지보다, 캐서린에게 좀 마음 아파하며 보게 됨...
 

<여기서부터는 스포주의!>

 
 처음엔 비밀을 감추려는 캐서린과 책의 저자인 스티븐의 강렬한 주장 때문에 정말 캐서린이 낸시와 스티븐의 아들인 조나단과 불륜 관계였는지를 의심하며 봤는데, 캐서린이 혼자 하는 생각들에 아픔이 있어서 점점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게 됐고, 아니나 다를까 조나단에게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전부터 예감은 있었지만, 너무 가슴 아픈 상황이라 제발 아니길 빌었음ㅠㅠ 남편이 먼저 떠난 휴가지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도 힘든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다가 세월이 흐른 후 갑자기 가해자로 몰리다니. 억울함을 밝히려면 자신의 피해 사실도 말해야 하는데, 그걸 말하는 게 어디 쉽겠냐고. 게다가 조나단의 마지막이 물에 빠지려던 니콜라스를 구해 주려다 죽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말하기 어려웠을 거다. 누군가 니콜라스를 구해줬으면 좋겠지만, 저 사람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던 캐서린의 말이 너무 공감 갔다. 게다가 갑자기 조나단 엄마가 와서 우리 아들이 당신 아들 구했어요, 요런 말하면 진짜 뭐라 해야 할지... 
 
 스티븐은 이해가려다가도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낸시가 쓴 원고 하나 때문에 그걸 믿고 책을 썼다는 게 이해 안 가다가도, 조나단의 마지막이 아이를 구하려다 죽었다는 사실과 정신적으로 좀 힘든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짓을 벌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함. 근데 그래도 적어도 캐서린과 미리 한 번 만나서 사실 확인을 해봤으면 어땠을지도. 책은 스티븐의 시점에서도 서술되기 때문에, 살짝 스티븐의 처지에 동정이 가려다가도, 캐서린만 생각하면 냉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단순히 사실 폭로라고 하기에는 캐서린을 너무 잘근잘근 괴롭힌다. 유일하게 잘한 점이 있다면 캐서린이 실제로 있었던 일을 고백할 때 바로 믿어줬다는 거다. 솔직히 여기서도 안 믿고 계속 괴롭혔으면 캐서린한테 더 괴로운 일들이 생겼을 거다.
 
 조나단 다음으로 짜증났던 인물이 캐서린의 남편이 로버트였다. 로버트는 한 치의 의심 없이 캐서린이 불륜을 저질렀을 거라고 바로 믿고, 캐서린을 몰아세운다. 사실 의심하려면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니 그럴 수는 있겠다 싶은데, 내뱉은 말이 너무 심하다. 아내에게 하는 거라고 믿을 수 없는 저속한 비속어들을 쉬지 않고 내뱉는데, 아무리 믿음이 깨졌다 해도 사람이 저럴 수 있나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캐서린을 철저히 무시한 채 대화도 하지 않고, 계속 나쁜 사람 취급하는데 아니, 어떻게 변명도 안 들어보지 싶어 캐서린의 불륜 사실이 긴가민가했을 때부터 너무 싫더라고. 솔직히 스티븐이 '내가 잘못 알았어요.' 라고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캐서린이 스티븐보다 먼저 사실을 말했대도 믿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로버트와 캐서린이 화해를 한 시점에 '이게 맞나' 싶었는데, 캐서린이 스티븐과 헤어질 결심을 해서 속 시원했다. 그리고 그때 생각한 캐서린의 말도 너무 공감 가서 밑줄 백개 치고 싶었다.
 

하지만 캐서린이 보기에 그는 처음에 맞닥뜨려야 했던 사실보다 새로 마주한 진실이 훨씬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간통보다 강간에 훨씬 안도하다니. 물론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리는 없고 절대 인정하지도 않겠지만 캐서린은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그에게 선택권이 있으면 그녀가 부정한 쾌락을 즐기도록 내버려둘 바엔 고통을 당하게 만드는 쪽을 선택할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조나단이 왜 갑자기 니콜라스를 구해줬는지에 대해 스티븐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섰음을 깨닫고, 수치심 때문에 그랬을 거라고 하지만, 솔직히 그건 너무 조나단을 좋게 본 해석 같다. 그렇게 잔인한 짓을 저지른 사람이 갑자기 수치심을 느낄리가. 그럼 왜 구해줬냐고 하기에는 굳이 생각해야 하나 싶다.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지옥에나 갔으면~
 
  애플 티비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소설을 몰입해서 봐서 드라마도 보고 싶었는데, 정호연 배우도 출연진 중에 있으셔서 더 흥미가 생겼다. 책에서는 주요 등장인물들이 많은 편은 아니라서 어떤 역할을 맡으셨는지 궁금하다. 왠지 감으로는 킴일 것 같다.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내용도 좀 추가되고, 킴이 스티븐을 조사하던 부분도 좀 분량이 늘어나지 않았을까? 확인하려면 드라마를 봐야 하는데, 애플 티비는 또 언제 가입해서 볼지 잘 모르겠다. 티빙을 가입해서 보는 게 더 빠를 것 같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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