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테레즈 라캥 후기

겨울오렌지 2025. 5. 22. 21:58

 

 

 뭔가 도파민 도는 소설 읽고 싶은데, 밀리의 서재 리뷰에 도파민 장난 아닌 소설이라고 적혀 있어서 골랐다. 페이지 수가 얇길래 '도대체 무슨 내용인데 이 짧은 페이지 수에서 도파민을..?' 싶었다ㅋㅋㅋ 또 책 초반 작가 소개글에서 박찬욱 감독 영화 '박쥐'가 이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설명이 있어서 더 궁금해졌다. 쫄보라 영화는 못 봤지만, '박쥐' 포스터는 본 적이 있고 유명한 영화니까 뭔가 기대감이 더 커진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포스터가 되게 치명적으로 나왔던 걸로 기억해서 이 소설 내용도 치명적(?)이지 않을까 예상했다. 근데 도파민 도는 소설은 맞는데 예상과는 다른 도파민이었다. 질척질척한 내용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주인공들이 더 아침 드라마급 막장임. 근데 인물들 심리 묘사는 기가 막히게 잘 되어 있다.
 
 소설은 가게를 운영하던 라캥 부인이 자기 아들인 카미유와 조카인 테레즈를 결혼시키고, 파리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행복하게 사는 걸로 시작한다. 테레즈는 카미유와의 결혼도 단조로운 생활도 모두 싫었지만, 꾹 참고 기계적으로 공허하게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남편의 손님으로 찾아온 로랑을 보고 알 수 없는 설렘과 불안함을 느끼는데, 로랑도 이를 눈치채고 기꺼이 테레즈와 불륜을 저지른다. 그렇게 밀회를 즐기던 둘이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카미유를 살해하는 계획을 세우는데, 이들의 위험한 계획이 곧 비극의 시작이 된다.
 
 사실 소설 초반에만 해도 테레즈를 동정했다. 라캥 부인이 카미유와 테레즈를 결혼시킬 때, 자신이 죽으면 허약한 자신의 아들을 테레즈가 돌보길 원했고, 대놓고 수호천사로서 테레즈를 아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순수한 목적으로 조카를 키운 게 아니라는 점이 너무 보여서 정이 안 갔다. 그래서 테레즈가 로랑과 불륜을 저지를 때 마음속으로 조금은 이해해주려고 했다. 불륜은 나쁜 건데, 여기서의 불륜은 진짜 사랑 없는 결혼, 억지로 하는 결혼, 억울한 결혼인 거잖아?! 근데 둘이 '카미유를 죽입시다!' 라는 공모를 할 때부터 책 읽던 눈동자가 흔들림ㅋㅋㅋㅋ카미유가 테레즈를 내버려두고 밖에서 못된 짓 저지르며 살았다면 조금 이해하겠는데, 카미유는 크게 잘못한 게 없어서... 카미유의 잘못이라면 자기 혼자만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았다는 것... 근데 이게 죽을 정도의 잘못인가 하면 모르겠다. 얇은 책이다 보니 전개가 후딱후딱 진행되는데, 빠른 불륜, 빠른 살해, 빠른 죄책감 등등을 보며 내 마음도 같이 바빠졌다. 진짜 얇은데 알찬 소설이야.
 
 테레즈와 로랑이 서로를 정말 사랑했는지를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테레즈는 가게에 로랑이 아닌 다른 잘생긴 젊은이가 찾아왔어도 좀 설렜을 것 같아. 맨날 가게에서 일하며 보는 사람이 거기서 거기였는데, 새로운 충격이 아니었을까...? 로랑도 테레즈랑 밀회 저지르다가 다른 여자가 접근했다면 거기로 갈아탔을 사람으로 보였다. 특히 그 여자가 자기 살림 챙겨줄 사람이었으면 더 그랬을 듯.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둘 마음이 식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외부 요소로 인해 헤어져야 하니까 둘이 더 불 붙은 거라고 본다. 난 테레즈보다 로랑이 더 싫었던 게 카미유 친구로 가게 왔고, 테레즈가 자기한테 호감 있는 거 눈치챘으면서 '사귈까 말까 사귀지 뭐! 카미유가 뭐라 하면 한 대 치지 뭐!' 이런 생각으로 일을 저지른 거라... 아니, 어떻게 자기 친구의 아내를 꼬실 생각을 하지? 불륜, 살인 저지르는 놈이라는 것부터 도덕성 빵점이라 기대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어떻게 자기 친구 아내를...? 이해할 수 없다, 진짜. 이와 같은 이유로 둘이 점점 파국으로 향할 때 무덤덤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라캥 부인이 조카를 자기 아들 며느리로 삼을 생각하며 챙겨줘서 그렇다. 카미유의 미래가 걱정됐다면 돌볼 사람을 고용하고, 조카는 그냥 키워주기만 하지. 근데 성인 된 카미유는 엄청 허약해 보이진 않던데. 나름 출근도 하고 그랬잖아여. 또, 가게 운영하고 재산 물려주고 그러는 걸 보면 돈도 좀 있으신 것 같은데, 왜 카미유 미래 걱정을 하신 걸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또 아들 살해 당한 라캥 부인 보면 좀 짠하고 그랬다. 아무튼 도파민 도는 소설인 건 확실하고, 개인적으로는 책태기 때 읽으면 좋을 책이라 생각한다. 진짜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된다구.